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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 람 Adama [Metaphysical Poem]
  • 작성자 admin
  • 등록일 2023-03-25 23:33
  • 조회 447

 

 

 

첫 사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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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빛이 처음 생기고

슬기사람이 처음 생긴 날

새벽 미명부터 석양녘까지

천지간에 한 청년이 곧게 서서

천정天頂을 응시하며 깊은 사색에 잠겨있다.

존재자에게 진리란 무엇인가?

 

 

현묘한 성야星夜에 태고의 별빛이 흐르고

청년의 미간에 지성이 흐른다.

지혜가 주재하는 사념思念의 밤

지면에서 곤비한 육은 휴면하고

상념은 꿈의 날개를 달고

관념의 세계를 비행한다.

 

 

다시 새벽이다

청천은 밝은 태양으로 빛나고

신의 전령을 담은 청아한 새소리는

미풍을 타고 천상에서 내려온다.

푸른 대지에 기화묘초가 조화미를 드러내고

숲에는 생명의 실과가 풍요롭다

 

 

청년은 다시 대지에 서 있다.

윤리적 실천이 결여된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낙원의 중심重心에 선 생명나무를 등지고 서서

금기된 지혜 휴브리스를 구한다

윤리의 과수에 달린 금단의 실과가 탐스럽다

낯익은 생명의 빛이 머리에 쏟아진다.

 

 

II

 

이제 청년은 가끔 사색한다.

오성을 벗어난 비논리적 세계는

그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혼몽한 의식과 본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고독과 곤핍을 사랑과 풍요로 대치하며

신독과 자족의 터 위에 생육과 정복을 일군다.

 

 

고독한 그에게 연인의 향기가 주어진다.

온 천지는 감미롭고 젖과 꿀이 흐른다.

사물을 규정하는 언어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가 되었다.

불꽃같은 사랑에의 헌정은

경이로운 새 생명을 창조한다.

 

 

분요한 낮이 지나면 밤의 향연이 오고

피로한 육은 성취감으로 소성되나

소욕의 일상사는 권태로 이어져

존재의 무의미를 증폭시킨다.

현존을 논하는 가치분석의 예리함은

낭만적 관용의 천으로 가리어졌다.

 

 

지상은 지식과 지략이 창일하나

지성의 중심에는 먼지가 쌓인다.

선악의 경계는 모호하고 유혹은 감미롭다.

오염된 세속의 공간을 뚫고 한 줄기 빛

미몽 속 천상에서 야곱의 사다리가 내려온다.

어둠이 깨닫지 못하는 생명의 빛이 낯설다.

 

 

III

 

청년은 비조鼻祖가 되어

침묵의 대지에 누워있다

그가 서 있었던 존재의 자리에

다시 그의 분신 내가 서있다.

현존재의 책무를 절감하며

나는 잊혀진 빛의 기억을 추고한다.

 

 

슬기사람이 생을 궁구하였던

팍타facta는 픽타ficta가되고

진위眞僞의 쟁논은 사조思潮의 군집群集을 이룬다.

빌딩 숲속에서 초점을 잃은

회색빛 군상群像이 잿빛하늘을 본다.

도심의 태양이 흐리다.

 

 

척박한 대지위에서 느끼는 기갈은

天空에서 지회遲徊하는 빛의 결핍이다.

밤이 지나도 또 흑암!

새벽은 기다림의 산물인데

허무와 나태의 수면에 취한 이 시대에

누가 새벽을 기다리는 시대의 파수꾼인가?

 

 

생명의 근원을 향한 응시 나의 갈구가 

선풍旋風 되어 구름 걷히고 구름사이 한줄기 빛이 드러난다.

눈물로 정화된 맑은 눈동자가 비은폐된 빛을 본다.

진리의 빛은 태초부터 우주에 충만하였다.

대지의 중심中心에 선 세계수世界樹 다시 향기를 발하고

생명의 빛이 몸 안에 머문다.

 

 

빛으로 가득 찬 우주. Fiat Lux! Let there be light! Genesis 1:3 우주배경복사 Cosmic Background Radiation. 특이점 singularity. 최초의 인간 Adama Humus. 존재자 das Seiende. 현존재 Dasein. 열린우주. 닫힌우주 zenith. 염려하는 사람. Die Sorge. 소립자. 테필린Tefillin이 위치하는 미간. 지성의 상징. REM수면 NonREM수면. 미네르바의 올빼미. 무의식.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 경험론과 관념론. 새와 시인 Hermes. 신의 전령사. 에덴동산. 생명나무. 선악과. 윤리적 지식. 한정된 공간과 무한의 공간 인식론과 존재론 실천윤리.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y.  Wundt 이해가 가능한 복잡성을 선호하다가 난해한 한계에 다다르면 포기. 생명이 계승되는 이유. 자아성취 self realization. 태고시간의 시원과 유한한 생. suitable helper . Eve. Lilith . 아담의 언어 LIngua Adamica. 가려진 진리. 사이스의 신상. 자연신학. 진리의 빛 신앙과 과학. 허무주의 불가지론 무신론 다원주의. 인간의 오만 Hubris. 사신신학 Death of God. 즉자와 대자. 구도자. metanoia 광합성과 포도당. 생명의 양식. 진리내존재. 세계수 : 우주의 기원 삶의 근원 상징. 원초질문 proto question 나와 세계의 근원과 종말, 존재의 의미와 생의 목적에 관한 질문.


 

 

 

먼 옛날, 하늘과 땅이 생기고 내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생겨난 사람이었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상상해본다. 태고의 순수한 자연을 바라보며 나의 존재의 근원과 내가 인지하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궁구하며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최선의 삶을 모색하였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인류최초의 사람이 아니어도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현재를 사는 우리만 아니라 이 세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존재의 원인과 생의 목적을 탐구하여야 할 동일한 의무가 있다. 태고에 최초로 원초질문에 대하여 사색한 사람은 바이블에 기록된 아담Adam이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슬기사람 Homo sapiens처럼 지혜로운 사람을 전제로 한다. 그는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있어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고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음미하며 선악을 판단하고 윤리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담이며 슬기사람이고 모든 존재물에 관심을 가지는 현존재가 되어 순간의 영락榮樂과 영속永續의 극락을 분별하며 우주를 고요히 바라보며 숙고하는 지식인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자신을 전경으로 하여 자신의 처한 상황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려는 순간, 나의 모습은 광활한 대지에 홀로선 아담의 모습과 다름이 없으며, 아직 인간의 모습을 갖지 못한 태아에서 발육하여 출생 후에는 기어 다니다가 직립보행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며 두뇌가 발달하다가 깊은 슬기에 도달한 슬기사람은 바로 내 자신이다*. 나는 아담이며 슬기사람이라는 선언은 내가 원초질문에 관하여 사색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경주자로서 달려야 할 임무를 띠고 경기장의 출발점에 서 있는 운동선수와 같다. 어디를 향하여 달릴 것인가에 대한 목표가 명확하여야 경기에 임할 수 있으며 결승점이 없는 경기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세계는 언제부터 있었고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며 우주와 인류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규명하지 않고는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없다. 원초질문은 세계와 생명의 시초, 시간과 공간의 한계, 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이다. 원초질문은 최초의 인간 아담의 질문이고 생각하는 갈대 roseau pensant 호모 사피엔스의 질문이며 이 질문은 철학이 되었다. (바이블의 아담은 바로 그 답을 알았고 아담의 계보를 존숭하는 이스라엘은 철학이 없음이 특징이다.) 그러나 아담을 잊은 슬기사람과 후대는 독자적으로 생명의 본질과 그 목적을 부단히 궁구하였을 것이다. 이후 이 질문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동양철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을 기반으로 발아 發芽되어 실제와 관념, 과학과 철학, 신화와 종교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지식이 축적되고 근현대에 이르러 정치와 종교의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제약 없는 사유와 과학문명의 도약으로 개화開花되어 만개하였지만 이성과 오성의 한계점에서 낙화落花되어 철학은 해체되고 과학은 무한의 거시 확산과 미시 수렴의 덫에 걸려 좌초되었다. 즉 유신론과 무신론, 창조론과 종말론, 영혼과 육체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태고의 인간이 인지하였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념의 영역에 머물게 되었다. 현대과학계 천재들의 회합에서는 빅뱅이전 무에서 유가 생성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고 현대철학계의 결론은 신 영혼 등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 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힐 뿐이다. 원초질문은 수학에서 한 줄의 답을 요하는 단순한 산술문제가 아니다. 국제수학경시대회에 출제되는 문제처럼 논리적인 전개를 요하며 정답을 얻기 위해 A4 용지10장의 답안지를 요할 수도 있고 페르마의 정리*처럼 한 권의 책 분량의 답안지가 필요할 수도 있다. 원초질문은 초월적 자기인식능이 있는 현존재에게 불안과 염려의 짙은 구름으로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인류집단에게 주어지는 공동의 질문이지만 이성과 신념의 영역에서 개인의 답변을 요구하며 문제의 해결은 내면의 평화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 과제를 푸는 일이 삶의 우선순위가 된다. 연극이 현실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환영무대 illusion stage에서 현실의 환영 illusion of reality을 경험하는 것처럼 무대가 지구이고 공연시간이 한평생인 연극배우로서의 인간persona은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에 의하여 구성된 우주속 지구의 안락한 생활세계everyday life world에 안주하다가 그곳이 연극무대이며 공연이 끝나면 자신의 거주지 영혼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처음도 끝도 없는 시간과 중심도 바깥도 모르는 공간가운데 태어나 성장을 위한 유소년기를 보내고 성숙을 위한 성년기를 맞아 비로소 자신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나 청장년기 일상은 잡담과 호기심 애매성의 비본질적 adiaphora요건으로 구성되어 퇴락으로 향하게 되며 반복되는 일상사는 권태 체념 중독 환각 우울 허무 광신 과신과 오만Hubris의 여정을 거쳐 노년기 이른다. 성실한 지식인 중에서 원초질문에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사회의 저명인사와 사상가 재력가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사람은 사회적 역할의 중대성과 성취욕 때문에 일생동안 분요한 생을 보내며 자신의 생을 분석하고 종합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러다가 임종을 목전에 두고 침대에 누워서 겨우 *원초질문을 상기하나 노욕과 노구의 경직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숭고한 삶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이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하여 입학시험장에 들어간 수험생이 처음 문제지를 읽고 난 후 시험시간 내내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나서야 시험문제를 다시 보고나서 답을 쓰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예기치 못한 신체적 질환과 재난으로 인하여 준비되지 못한 채, 생의 종식을 맞는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이들은 사춘기에 직면했던 원초질문과 다시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홀연히 삶을 마감한다. 그러므로 원초질문에 대한 숙고는 생의 예측불가능성으로 인하여 미루거나 중단할 수 없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는 하루살이 Homo Ephemeros 에 불과하며 생명의 특성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에  지금 여기에서 hic et nunc 잊혀진 원초질문을 마주하여야 한다. 야생의 초원에 던져진 갓 태어난 어린 사슴은 잠시 비틀거리다가 이내 홀로 서서 생존본능을 따라 초장을 이동하며 생육하고 번식하다가 생을 마치고 사람도 피투체 geworfen로 태어나 선조의 뒤를 이어 살아가다가 자손을 남기고 홀연히 생을 마감한다. 생명을 가진 존재의 생멸 과정이 유사하게 보이나 지성을 지닌 인류는 자신과 세계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합목적적 삶을 지향한다. 보편적으로 사람이 태어나 유년기 성장과 사춘기 성숙의 시기를 지나 성년식을 할 즈음이 되면 그간 잠재된 원초질문이 구체적으로 삶에 파고든다.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생의 목표를 규명하는 일이 우선임을 절감하는데 그 고뇌와 절박감은 지성의 예리함이 더 할수록 심화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짧은 생애 중에서 원초질문에 답 할 책무를 알아차리는데* 생의 사분의 일을 소모한다. 그러다가 존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한 해답이 쉽지 않음을 알고 이 근원적인 문제를 보류하거나 포기하고 복잡한 현실에 매어 분요한 생을 보내게 된다. 청년의 때에는 배움에 전념하며 사랑에 빠지고, 중년의 시기는 가정을 돌보며 기업을 일으키며 자아실현을 위해 전념하고, 노년이 되면 자리에 누워 생을 회고한다. 그리고 지나간 일평생이 생물학적 삶이었음을 고백하고 노년이 주는 예지로 다시* 잊어버린 원초질문을 상기한다. 이렇듯 원초질문의 중대성을 알면서도 미제 상태로 방치한 채 일상을 보내는 이유는 자신이 풀어야 할 문제임을 모르는 미몽 때문이며 이 질문의 긴박성과 중요성을 간과하기 때문이고 지혜로운 소수자는 자신의 이성으로 해답을 얻으려고 시도하다가 좌초된 후에 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고백론에서 그는 자신이 지나간 젊음의 날에 향락에 취하여 원초질문을 잊어버리고 살아왔음을 고백하고 진리를 찾아 구도자의 길을 택한다. 그는 존재근원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는 자책이 참회로 이어지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우선적인 책무가 존재이유를 알아야하는 것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원로지성인의 존재질문에 대한 늦은 자각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을 가져야만 인간은 자신의 처한 상황에 대하여 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한 개인에게 존재자각의 ‘알아차림’은 귀한 순간이며 이의 포기는 원점으로의 회귀와 다름이 아니다. 알아차림은 이전에 가졌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판단을 중지하며*epoche 가치관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우는 겸허함에서 시작된다. 구도자의 길을 가는 첫걸음은 알아차림이며 인간의 존엄성은 여기서 시작된다. 고향 이타카Ithaca로 가는 오디세이Odysseus에게 아이아이에Aeaea island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긴 여정 잠시의 쉼은 필요하나 휴게실에서 평생을 보낼 수는 없듯이 우리도 유희와 취미로 일생을 마감할 수 없다. 세속적 쾌락은 권태를 가져오고 자기의 본래성Eigentlichkeit을 잃은 소모적 일상은 불안에 잠긴다. 생활세계에서 대면하는 비논리적 현실에 고뇌하다가 이성적 인간이 절망할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Grenzsituation에 당면하게 되면 고향에의 동경이라는 복원력의 작용으로 키르케의 유혹 그 미몽에서 깨어나 귀향을 결심하게 된다. 이제 철학이 되어버린 원초질문에 대한 해제의 책무는 철학자뿐 아니라 우리모두의 의무이어서 각자 살아가면서 철인은 인식론 존재론 실천윤리를 논하고 평인은 고향을 노래하고 시인은 아포리아적 상황에서 비범의 촌언으로 답한다. “철학은 본래적으로 향수병이다!’ “Philosophie ist eigentlich Heimweh!” sagt Novalis 수세기전 시인이 외쳤던 명문은 철학계에 반향되어 한세기가 지난 후 하이데거는 복창으로 화답한다. “ 철학은 향수병이다!' 그는 이 시대는 고향상실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우리는 자신이 안거해야 할 고향을 떠나 밤의 심연에서 유리하는 실향적 상황에 처해 있고 그 이유는 신과 원초적 퓌지스Physis의 결어라고 선언한다. 고향은 존재자체의 근저이고 귀향은 숭고한 영혼이 자신의 근원 가까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이와같이 철학의 본래적 과제는 존재의 진리가 드러나는 곳으로 귀향하는 노력이라고 요약한다. 무신론 철학자의 '고향Heimat 고향상실Heimatlosigkeit 향수병Heimweh 귀향Heimkuhr' 으로 이어지는 생의 여정 제시는 이념과 취향을 떠난 필연적인 귀결이며 진리의 비은폐성Unverborgenheit과 자증성autopistia의 드러남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존재목적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는 곳은 즉자와 대자, 인도人道와 천도天道의 경계이고 생물학적 출생에서 지성적 탄생the second birth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다. 이 자리에 서는 자는 비로소 철학에서 언급한 초월적 자기인식, 현존재Dasein 의식을 가진 자로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이다. (Seeking Truth I)

 

 

 

 

 소   진    진  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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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o Ephemeros

Neologism by Dr Woo J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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